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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허문 100년 전 청주 문화 유산들

조미애 | 2019.01.21 | 좋아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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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의미가 남다른데요..

일제 강점기는 서울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에
되돌릴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백년 전 사진에 나타난
청주지역의 문화 유산 모습으로 ,
그 심각성을 엿봤습니다.
조미애 기자입니다.


(기자)
1910년대 초까지 높이 4m 둘레 1.7km 크기로,
청주 성안동 일대를 에워쌌던 청주읍성.

조선시대 청주목 행정의 중심이자,
임진왜란 첫 읍성 탈환의
승리를 거둔 곳입니다.

그러나, 강점기 때 일제는 도시정비 명목으로
청주읍성 성벽을 흔적도 없이 허물었습니다.

그 성돌이 하수구 축대나
도로 개설용으로 쓰이면서
민족 문화 말살 의도로도 평가받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청주읍성이 고려 때 축조돼,
조선시대 여러차례 개축된 것으로 보지만,
삼국사기 기록을 통해서는 그 전신이
통일신라 때 서원경성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 박상일/청주문화원장 ]
"청주 목(고려·조선시대 행정구역)의 권위,
도시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서 읍성을 쌓았다고 봐야죠.
이것은 어떤 전쟁에 대비한 거라기보다는
도시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청주 읍성을 쌓았다고 봐야 돼요."

청주읍성은 지역 시민단체들의
'성돌모으기'운동으로 지난 2013년
650여 개의 성돌로 극히 일부가 복원됐고,

청주읍성 4대문 중 유일하게 사진이 남아있는 청남문은 터만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까지 국내 가장 긴 돌다리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남석교도
일제를 거치며 현 육거리시장 지하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906년 대홍수로 무심천 물길이 바뀌고
남석교 아래 흙이 쌓이자,

일제는 1932년 제방공사를 하면서
이 다리를 흙으로 덮어버렸습니다.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엔
1932년까지 81m 길이를 자랑하는 남석교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길 아래에는 그 돌다리 형태 그대로 묻혀있습니다.

[ 성재현/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사 ]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역시 이런 사진 자료를 통해서 많이 훼손되고
어려웠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진 자료는 현재의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복원하고
계승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주의 이런 옛 모습은
다음 달 10일까지 청주박물관에서 열리는
<100년 전 청주 이야기> 전시회에서,
18세기 '청주목지도', 19세기 '청주읍지' 등의
고서와 100년전 요리법을 담은 '반찬등속'과
함께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MBC뉴스 조미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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