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충북

가구와 가전제품을 밤 12시 전에 주문하면 이튿날 배송해 설치까지 해주는 쿠팡 '로켓설치' 대리점 대표가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여름 성수기에 물량은 넘쳐나는데, 기사를 구하지 못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합니다. 

김은초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지난달 1일 새벽, 쿠팡 가전·가구 배송 대리점입니다. 

대표 정 모 씨가 계단 난간에 기대어 있다가 허공을 한참 동안 바라봅니다. 

정 대표는 12시간 뒤 건물 뒤편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정 대표는 쿠팡에서 가구와 가전제품을 주문하면 배송해서 설치까지 해주는 '로켓설치' 대리점을 운영했습니다. 

밤 12시 전에 주문하면 이튿날 배송하는 게 계약 조건입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로켓설치 주문 마감 시간이 오후 2시에서 자정으로 늘어나면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졌습니다. 

◀ INT ▶ 창고 직원 

"밤 12시까지 주문 컷오프해서 (본사에서) 물량 내보내면 그다음에 배차를 하고 그러면 우리는 그 시간 안에 무조건 해줘야 되고. 대표님 같은 경우는 전혀 쉴 수가 없어요." 

하지만 배송할 물량은 더 많아졌습니다. 

여름철을 앞두고 에어컨 주문이 크게 늘면서 배송 물량은 최대 2배가량 늘었습니다. 

◀ SYNC ▶ 故 정 대표 (사망 전날 밤, 직원과 통화) 

"와 죽을 것 같다, 죽을 것 같아. 고비다 고비. 한 일주일째 잠을 못 자고 있다." 

배송을 앞둔 소파입니다. 무게가 많게는 80kg에 달합니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가구와 가전제품들이 창고를 가득 채웠는데, 이걸 분류하는 작업을 2시간 안에 모두 마쳐야 합니다. 

물량이 폭주해도 당일 배송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배송 기사를 구해 아침 일찍 물건을 내보내야 했다고 직원들은 말합니다. 

◀ INT ▶ 대리점 직원 

"누군가 진짜 죽어야 끝날 것 같다. 그런 얘기를 사실 되게 많이 했거든요. '혹시나 내일 어떤 기사가 쉰다고 하면 어떡하지' 계속 24시간 긴장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쿠팡이 약속하는 배송 예정일, 이른바 PDD. 

주문 이튿날까지 배송을 못 해 PDD를 못 지키면 위탁 운영 계약은 즉시 해지될 수 있습니다. 

해지 기준은 월 0.1%, 1천 개 중 1개만 늦어도 안 됩니다. 

택배 로켓배송의 경우 0.5%인데, 가전·가구 대리점에 적용되는 기준이 훨씬 까다롭습니다. 

◀ INT ▶ 대리점 직원 

"(배송 지연) 이슈가 나게 되면 본사에서 계약서를 운운하기도 하고, 전국에 대표님들 다 모아놓고 (화상) 회의 진행하고 계속 그러거든요. 능력 없는 죄인이 되는 거거든요." 

정 대표는 충청권을 담당하는 청주 대리점을 운영하다가, 숨지기 2주 전 경기 오산 대리점까지 영업을 확장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신규 대리점에서는 배송기사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 SYNC ▶ 故 정 대표 (지난 7월 27일, 쿠팡 본사 직원과 통화) 

"그걸 맡아가지고 지금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걱정돼요 진짜. 기사들이 쉽게 들어오지 않으니까..." 

대리점 운영을 그만두려 해도 계약 때문에 최소 석 달은 버텨야 했습니다. 

◀ INT ▶ 故 정 대표 아내 

"오산이 피해가 지금 너무 크니까 오산을 접으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손해배상 비슷한 금전적인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었어요. 진작 손을 놓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 같거든요." 

정 대표가 목숨을 끊은 8월 1일은 오산 대리점 운영을 시작한 지 14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새벽, 정 대표는 배송 기사 13명 중 8명만 출근할 수 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최소 40건 이상 배송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쿠팡 CLS는 "정 대표의 사망은 당사 위탁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 사유로 알고 있다"면서 "악의적인 허위 보도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김은초입니다.

영상취재 신석호, CG 변경미